안전과 행복은 따뜻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살면서 쉬운 해답과 값싼 위안에 만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성숙한 악마의 사도가 충동질하는 악마적인 삶은 위험한 것이다. 당신은 위안을 주는 환상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의 영원한 생명이라는 믿음의 고무젖꼭지를 더 이상 빨고 있을 수 없다. 그 위험에 맞서려면 '성장과 행복'을 얻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당신이 성장해서, 존재가 무슨 의미인지 대면함으로써, 그것이 덧없는 것이며 그렇기에 더더욱 소중한 것이라는 사실에 대면함으로써 알게 되는 기쁨과 말이다.
우리는 과학이 발견하고 있듯이 우주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양자 불확정성, 블랙홀, 빅뱅, 팽창 우주, 지질학적 시간을 걸친 대단히 느린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과학을 두려워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은 이런 것들이 왜 이해하기 어려운지, 왜 그 노력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지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벼락출세한 유인원이며, 우리의 뇌는 오로지 석기 시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아남는 법을 세세하게 이해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체계를 갖춘 종교가 노골적인 적대감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이유는 러셀의 찻주전자를 믿는 것과 달리, 종교는 강력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금을 공제받으며, 아직 어려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주입된다는 점 때문이다. 아이들은 찻주전자를 다룬 엉터리 책들을 암기하면서 인격형성기를 보내라고 강요받지 않는다. 부모가 기이한 모양의 찻주전자를 선호한다고 해서 정부 보조금을 받는 학교가 그 부모의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은 없다. 찻주전자 신자들은 찻주전자 불신자, 찻주전자 배교자, 찻주전자 이단자, 찻주전자 모독자를 돌로 쳐 죽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찻주전자를 믿는 비정통파 부모의 딸과 혼인하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는다. 찻주전자에 우유를 먼저 따르는 사람들이 찻물을 먼저 따르는 사람들의 무릎에 일부러 우유를 엎지르는 짓도 하지 않는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정신 바이러스들은 희생자에게 쉽게 검출되지 않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어느 정신 바이러스의 희생자라면, 당신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 사실을 격렬하게 부정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정신 속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어떤 가시적인 표시를 찾아야 할까? 나는 의학 교과서가 환자(편의상 남성이라고 하자)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어떻게 기술할지 상상함으로써 해답을 찾고자 한다.
1. 환자는 대개 어떤 것이 참이거나 옳거나 고결하다는 내면의 깊은 확신에 따라 행동한다. 그 확신이 증거나 이성에 기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것이 대단히 압도적이며 설득력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 의사들은 그런 믿음을 '신념'이라고 말한다.
2. 환자들은 대개 신념이 증거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음에도, 그 신념에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긍정적인 미덕을 부여한다. 사실 그들은 증거가 적을수록 그 믿음이 더 고결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증거 부족이 신념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이 역설적인 개념은 스스로 유지되는 프로그램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 준거적이기 때문이다. 한번 믿음을 얻은 명제는 자동적으로 반대 주장들을 억압한다. '증거 부족이 미덕이다'라는 관념은 상호 지원하는 바이러스 프로그램들의 집합에 들어 있는 신념 자체와 결합함으로써, 탄복할 만한 동료가 될 것이다.
3. 신념 환자에게 또 하나 나타날지 모르는 관련된 증상 하나는 '수수께끼'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확신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수수께끼 자체를 즐겨야 하며, 더 나아가 그 해결 불가능성을 만끽해야 한다.
사회는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모가 특정한 종교관을 아이에게 심어줄 권리와, 가령 진화를 가르치는 생물학 수업을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막는 것 같은 권리를 자동적으로 지닌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모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의 업적을 가르치는 예술사 수업에 아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분개할 것이다. 한 학생이 '종교 때문에 정해진 날에 기말시험을 칠 수 없으니까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따로 시험을 치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우리가 왜 그런 요구를 "야구 시합이 있으니까 (아니면 어머니의 생일날이라서) 그날 시험을 칠 수 없어요" 라는 요구보다 더 존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종교적 견해를 대하는 그런 호의적인 태도는 전시에 절정에 다다른다. 깊이 생각한 끝에 나온 도덕철학적 논증을 통해 자기 개인의 평화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대단히 지적이고 성실한 개인은 양심적 병력 거부자 지위를 획득하기가 어렵다. 그가 경전에 싸움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종교의 신자로 태어났을 때에만, 그에게는 다른 논증이 전혀 필요없게 된다. 생물 복제 같은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를 때마다 종교 지도자들의 집으로 달려가게끔 하는 것도 바로 그와 똑같은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대신에 자신이 주목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스스로의 입을 통해 입증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 입장에서 밈의 원래 임무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 단어는 그것이 없었더라면 이기적 유전자를 진화의 처음이자 끝, 선택의 근본 단위, 모든 적응 양상을 혜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의 계층 체계에서의 실체라고 찬양하는 데 헌신하는 듯이 보였을 것이 분명한 책의 끝 부분에 소개되었다. 따라서 독자들이 그 책을 DNA 분자라는 의미의 유전자에 관한 것이 분명하다고 오해할 위험이 있었다. 사실 DNA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 선택의 진짜 단위는 복사가 이루어지는 모든 단위들, 즉 모든 종류의 복제자였다. 그것은 때때로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것의 복제 확률은 어떤 영향이나 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신다윈주의가 이 행성에서의 진화를 이끄는 추진력이라고 본 유전적 자연선택은 내가 '보편적 다윈주의'라고 이름을 붙인 더 일반적인 과정의 특수한 사례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마 우리는 다른 사례를 찾으려면 다른 행성에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종류의 다윈 복제자가 지금 바로 앞에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여기에서 밈이 등장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리처드 도킨스, <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A Devil's Chaplain> 中
우리는 과학이 발견하고 있듯이 우주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양자 불확정성, 블랙홀, 빅뱅, 팽창 우주, 지질학적 시간을 걸친 대단히 느린 움직임. 이 모든 것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이 과학을 두려워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과학은 이런 것들이 왜 이해하기 어려운지, 왜 그 노력이 우리를 두렵게 하는지까지도 설명할 수 있다. 우리는 벼락출세한 유인원이며, 우리의 뇌는 오로지 석기 시대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아남는 법을 세세하게 이해하도록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체계를 갖춘 종교가 노골적인 적대감의 대상이 되어 마땅한 이유는 러셀의 찻주전자를 믿는 것과 달리, 종교는 강력하고, 영향력을 발휘하고, 세금을 공제받으며, 아직 어려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주입된다는 점 때문이다. 아이들은 찻주전자를 다룬 엉터리 책들을 암기하면서 인격형성기를 보내라고 강요받지 않는다. 부모가 기이한 모양의 찻주전자를 선호한다고 해서 정부 보조금을 받는 학교가 그 부모의 아이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일은 없다. 찻주전자 신자들은 찻주전자 불신자, 찻주전자 배교자, 찻주전자 이단자, 찻주전자 모독자를 돌로 쳐 죽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하나가 아니라 세 개의 찻주전자를 믿는 비정통파 부모의 딸과 혼인하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는다. 찻주전자에 우유를 먼저 따르는 사람들이 찻물을 먼저 따르는 사람들의 무릎에 일부러 우유를 엎지르는 짓도 하지 않는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성공한 정신 바이러스들은 희생자에게 쉽게 검출되지 않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당신이 어느 정신 바이러스의 희생자라면, 당신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심지어 그 사실을 격렬하게 부정할 가능성도 있다. 자신의 정신 속에서 바이러스를 검출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을 때, 어떤 가시적인 표시를 찾아야 할까? 나는 의학 교과서가 환자(편의상 남성이라고 하자)의 전형적인 증상들을 어떻게 기술할지 상상함으로써 해답을 찾고자 한다.
1. 환자는 대개 어떤 것이 참이거나 옳거나 고결하다는 내면의 깊은 확신에 따라 행동한다. 그 확신이 증거나 이성에 기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것이 대단히 압도적이며 설득력 있는 것이라고 느낀다. 우리 의사들은 그런 믿음을 '신념'이라고 말한다.
2. 환자들은 대개 신념이 증거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음에도, 그 신념에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긍정적인 미덕을 부여한다. 사실 그들은 증거가 적을수록 그 믿음이 더 고결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증거 부족이 신념에 긍정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는 이 역설적인 개념은 스스로 유지되는 프로그램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것은 자기 준거적이기 때문이다. 한번 믿음을 얻은 명제는 자동적으로 반대 주장들을 억압한다. '증거 부족이 미덕이다'라는 관념은 상호 지원하는 바이러스 프로그램들의 집합에 들어 있는 신념 자체와 결합함으로써, 탄복할 만한 동료가 될 것이다.
3. 신념 환자에게 또 하나 나타날지 모르는 관련된 증상 하나는 '수수께끼'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확신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수수께끼 자체를 즐겨야 하며, 더 나아가 그 해결 불가능성을 만끽해야 한다.
사회는 내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부모가 특정한 종교관을 아이에게 심어줄 권리와, 가령 진화를 가르치는 생물학 수업을 아이가 듣지 못하도록 막는 것 같은 권리를 자동적으로 지닌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부모의 취향에 맞지 않는 예술가들의 업적을 가르치는 예술사 수업에 아이가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분개할 것이다. 한 학생이 '종교 때문에 정해진 날에 기말시험을 칠 수 없으니까 아무리 불편하더라도 따로 시험을 치게 해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고분고분하게 따른다. 우리가 왜 그런 요구를 "야구 시합이 있으니까 (아니면 어머니의 생일날이라서) 그날 시험을 칠 수 없어요" 라는 요구보다 더 존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종교적 견해를 대하는 그런 호의적인 태도는 전시에 절정에 다다른다. 깊이 생각한 끝에 나온 도덕철학적 논증을 통해 자기 개인의 평화주의를 정당화하려는 대단히 지적이고 성실한 개인은 양심적 병력 거부자 지위를 획득하기가 어렵다. 그가 경전에 싸움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 종교의 신자로 태어났을 때에만, 그에게는 다른 논증이 전혀 필요없게 된다. 생물 복제 같은 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를 때마다 종교 지도자들의 집으로 달려가게끔 하는 것도 바로 그와 똑같은 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 대신에 자신이 주목을 받을 만하다는 것을 스스로의 입을 통해 입증하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내 입장에서 밈의 원래 임무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그 단어는 그것이 없었더라면 이기적 유전자를 진화의 처음이자 끝, 선택의 근본 단위, 모든 적응 양상을 혜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생명의 계층 체계에서의 실체라고 찬양하는 데 헌신하는 듯이 보였을 것이 분명한 책의 끝 부분에 소개되었다. 따라서 독자들이 그 책을 DNA 분자라는 의미의 유전자에 관한 것이 분명하다고 오해할 위험이 있었다. 사실 DNA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연 선택의 진짜 단위는 복사가 이루어지는 모든 단위들, 즉 모든 종류의 복제자였다. 그것은 때때로 오류를 저지르기도 하고, 그것의 복제 확률은 어떤 영향이나 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신다윈주의가 이 행성에서의 진화를 이끄는 추진력이라고 본 유전적 자연선택은 내가 '보편적 다윈주의'라고 이름을 붙인 더 일반적인 과정의 특수한 사례에 불과할 뿐이었다. 아마 우리는 다른 사례를 찾으려면 다른 행성에 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른 종류의 다윈 복제자가 지금 바로 앞에서 우리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바로 여기에서 밈이 등장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리처드 도킨스, <악마의 사도 -- 도킨스가 들려주는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 이야기 A Devil's Chaplain>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