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페이지라고 뜨면요. 바로 위의 블로그 제목 한 번 눌러주시면 뭐가 나와요. La luna vino a la fragua... 요거요.

< 그들 각자의 영화관 (Chacun son cinéma ou Ce petit coup au coeur quand la lumière s'éteint et que le film comm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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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외 상영관 (Cinéma d'Eté / Open-Air Cinema) ㅡ 레이몽 드빠르동 (Raymond Depardon)
옥상 야외 극장을 짧게 스케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영화가 상영되고... 그런 걸 그냥 담담하게 보여줬다. 이름 모를 곡의 뮤직비디오 같기도...

2. 어느 좋은 날 (One Fine Day) ㅡ 기타노 다케시(北野武, Takeshi Kitano) 어느 시골의 외딴 극장. 농부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극장에 들어온다. 극장에는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키즈 리턴>이 상영되고 있다. 극장 안에 관객이라곤 농부와 강아지 한마리 뿐~. 기타노 다케시가 영사 기사로 직접 출연해서 약간 웃었다. 영화 분위기도 왠지 귀여운 과였다. 영화를 막 짤라먹고 보여줘도 찍 소리 않고 보고 가는 농부. 무념무상 멍멍이. 왠지 띨띨한 영사 기사. (기타노 다케시보다 비트 다케시 모습으로 출연한 건가...?) 외딴 극장도 어쩐지 푸근하고 따땃한 분위기다. 시골의 허름한 극장보다는 그림책에서 빠져나온 듯한 동화적인 극장에 가깝다. 근데 농부 자전거는...?

3. 3분 (Trois Minutes / Three Minutes) ㅡ 테오 앙겔로풀로스(Theodoros Angelopoulos) 극장에 한 여자가 들어온다. 여자는 계속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한 남자를 발견한다. 여자가 찾던 사람인가보다. 여자는 남자에게 뭐라 뭐라 고백의 말을 한다. 여자는 잔느 모로. 남자는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 근데 어디선가 "컷~!" 하는 소리가 들린다. "컷! 3분 다 됐어요." 이런다. 이게 영화 속이었는지 밖이었는지 잠시 혼란이... 영화 속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해보이는 게 재밌었다. 영화랑 극장이라는 공간에 바치는 찬사 같았다.

4. 어둠 속의 그들 (Dans le Noir / In the Dark) ㅡ 안드레이 콘잘로브스키(Andrei Konchalovsky)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2분의 1>이 상영되는 극장. 여기도 참 관객이 없다. 혼자 눈물을 짜는 중년 여인과 한 젊은 커플만 있다. 그나마 이 커플은 영화를 보는 것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애정행각에 바쁘다. 스크린에는 8과 2분의 1이 떠있고, 스크린 아래에는 연인들이 자기 세상에 빠져있다. 자기네끼리의 영화를 찍고 있다.

5.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일기 (Diaro di uno Spettatore / Diary of a Movie-Goer) ㅡ 난니 모레티 (Nanni Moretti) 감독이 아닌 일개 관객으로서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를 하는 난니 모레티. 트뤼포 영화에 대한 추억. 어머니와 함께 본 <레전드 오브 더 폴 Legends of the Fall>, 아들과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함께 보겠다고 약속해버린 일화... 그런 걸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날카로운 비판과 풍자의 거장 감독이 아니라, 그냥 한 영화 관객이 되서 들려주는 이야기. 아들과 아빠의 은근한 신경전은 꽤 재밌었다.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감독이라도 자기 아들에겐 쩔쩔 매는 게 인간미가 나기도...

6. 전희 영화관 (The Electric Princess House) ㅡ 허우 샤오시엔 (侯孝賢, Hsiao-hsien Hou) <쉘브루의 우산>이 상영되는 옛날 극장. 한 부부가 아이들과 극장 나들이를 나왔다. 남편은 장첸이고 아내는 서기. 다른 거보다 시점을 눈 깜짝할 새에 바꿔주는 게 기억에 남았다. 시간을 건너뛰는 깜찍 연출... 푸근한 것도 같고, 약간 슬픈 것도 같고 그랬다. 빨간 풍선이랑 까페 뤼미에르 봤던 게 생각났다. 별 거 아닌 걸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빤짝빤짝하는 뭔가를 보여줬었지. 허우 샤오시엔 감독도 만드는 영화마다 티가 나는 타입인가보다. 이 영화 이 사람이 만든 거 맞구나 싶게~. 짧게 만들든, 길게 만들든...

7. 어둠 속에서 (Dans l'Obscurité / Darkness) ㅡ 장 삐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Jean-Pierre Dardenne & Luc Dardenne) 극장 안에 소매치기가 있다. 깜깜한 틈을 타서 관객을 터는 게지. 슬픈 영화가 상영되는 순간. 소매치기는 오늘도 본업에 충실하고 있다. 옆에는 영화에 흠뻑 빠져 눈물을 철철 흘리던 한 여자가 있다. 여자는 눈물을 닦으려고 손을 뻗었다가 소매치기의 손을 잡게 된다. 심지어 남의 손인지도 모르고 눈물 범벅된 자기 얼굴에 갖다댄다. 웃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모를 묘한 상황. 요 자체가 재밌었다. 소매치기 소년이 이 일로 개과천선을 했을지 그냥 재수 옴붙은 날이라고 생각했을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근데 일상적인 아이러니가 철학적인 화두로 잽싸게 이어지는 듯한 이 느낌은 뭐냐...

8. 그들의 어리석음 (Absurda) ㅡ 데이빗 린치 (David Lynch) 이미지만 해도 압도적이었다. 분명히 상상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 상상이 매끄럽게 현실이 되는 데는 놀랐다. 스크린 안과 객석의 경계를 없앤 듯한 모호한 영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남녀의 기분 나쁜 대화. 끔찍한 일이 일나긴 하는데, 그게 소리로만 들려오는 오싹함... 스크린을 뚫고 나와 객석에 걸쳐진 이따만한 가위는 존재감 자체가 후덜덜하다. 시각적으로도 압도적이지만 응축의 기술도 대단하다. 꼴랑 3분 남짓한 시간 안에 굉장히 많은 걸 압축해서 보여준다. 노련하다는 게 이런 건가보다. 아, 마지막 독백도 찌르르했다.

9. 애나 (Anna) ㅡ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alez Inarritu) 눈물 흘리는 여자의 눈이 인상적이었다. 새파란 눈은 진짜 후덜덜... 유난히 클로즈업이 많기도 했다. 시각적으로 강렬했지만 이 짧은 이야기에 반전이 있기도... 장님에게 영화를 본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소리만으로 화면을 상상하며 봐야 할텐데... 막연히 생각하면 눈이 보이는 사람들보다 손해인 것 같다. 근데 또 어쩌면 더 넓게 더 자유롭게 볼 수 있을 거 같기도 하다. 제공되는 시각적 이미지에 구속되지 않고~.

10. 영화 보는 날 (En Regardant le Film / Movie Night) ㅡ 장예모 (張藝謨, Yimou Zhang) 야외극장이 열리는 산골 마을. 애어른 할 거 없이 들떠서 축제 분위기다. 해가 지고, 영화가 시작되고, 떠들다 지친 애들은 잠들고, 처녀총각이 묘한시선을 주고받고... 저 앞의 <야외상영관>과 비슷한 감성의 단편이었다.

11. 하이파의 디부크 (Le Dibbouk de Haifa / Haifa Dibbuk) ㅡ 아모스 지타이 (Amos Gitai) 1936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극장 안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있는 유태인들... 그리고 갑자기 2006년 이스라엘 하이파 시내의 한 극장을 보여준다. 현대의 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 뜬금없이 공습 경보가 들린다. 군인들이 극장에 뛰어 들어와 빨리 대피하라고 외친다. 대뜸 폭격이 시작된다. 극장 안이 갑자기 아수라장이 된다.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관객들까지 보인다. 이스라엘 현대사가 극장 안까지 밀려들어오는 거였다. 심란하고 무거웠다.

12. 무당벌레 (The Lady Bug) ㅡ 제인 캠피온 (Jane Campion) 관객이 다 빠져나간 텅 빈 극장. 무당벌레 아가씨에겐 이 빈 극장은 행복한 무대다. 기쁘게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공간. 그치만 청소부 아저씨는 그저 극장 안에 들어온 벌레를 잡고 싶어 안달이다. 무당벌레 아가씨도 청소부도 무언가의 비유 같다...? 무당벌레 아가씨가 워낙 발랄해서 비참한 결말을 상상이 안 됐는데... 줵일~. 그렇게 처참하게 밟혀 죽을 줄은 몰랐다. 어흐흑.

13. 동시 상영 세편 (Artaud Double Bill) ㅡ 아톰 에고이앙 (Atom Egoyan) 한 동시 상영관. 장 뤽 고다르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영화를 보고 있던 한 여자. 이 여자의 친구는 딴 극장에서 <어져스터>를 보고 있다. 앞의 여자는 친구에게 영화의 영상을 휴대폰으로 보낸다. 어져스터를 보고 있다가 잔다르크의 수난을 폰으로 본단 말이지...? 세월따라 영화관 풍경도 이렇게나 변했다는 뜻인가. 그, 근데 난 아직 극장에서 휴대폰 쓰는 모습은 곱게 보진 못하겠다. 게다가 상영 중인 영화 화면을 찍어 전송하다니, 무슨 짓이냐. 누구한테 허락 받았다고... 아하하, 근데 그런 윤리적인(...?) 면들을 빼고, 두 여자의 소통 자체는 멋졌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보는 걸 너에게도 똑같이 보여줄 수 있다. 그 자체는 근사하지 않나. 꺄하하.

14. 주물 공장 (La Fonderie / The Foundry) ㅡ 아키 카우리스마키 (Aki Kaurismaki) 오후 6시. 주물 공장 노동자들이 공장 안의 작은 영화관으로 향한다. 저녁 식사 시간인데 아마도 뭔 영화를 보여주기로 되어 있었나보다. 스크린에 비친 건 노동자여 깨어나라 류의 영화다. 그치만 노동자들은 멍한 표정으로 맛없는 저녁밥을 먹어치울 뿐이다. 영화에 경도되는 사람은 없고, 다들 피곤하고 지쳐 보인다. 모두 영화고 뭐고 빨리 잔업을 해치우고 집에 가서 뻗고 싶을 뿐이겠지. 누구에겐 영화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환상이거나 현실의 일부겠지만... 이 사람들에겐 그냥 닿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다. 심드렁한, 퍽퍽한 분위기가 독특했다.

15. 아이러니 (Recrudescence / Upsurge) ㅡ 올리비에 아싸야스 (Olivier Assayas) 극장에 온 한 커플. 그리고 그 둘을 따라온 한 남자. 커플이 키스하는 사이에 둘을 뒤쫓던 남자는 여자의 가방을 훔쳐 극장 밖으로 나온다. 셋이 무슨 사이인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관객이 알아서 상상하라는 건가보다.

16. 47년 후 (47 Ans Après / 47 Years Later) ㅡ 유세프 샤힌 (Youssef Chahine) 1954년 깐느 영화제. 첨으로 영화제에 참가한 젊은 감독이 화면에 잡힌다. 유세프 샤힌 감독 자신이다. 바로 47년의 자기 모습~. 47년 후에는 공로상을 받는 대감독이 되셨다. 아하하, 깐느 영화제에 얽힌 자화자찬을 솔직하게 풀어놓으셨... 근데 젊은이들을 향한 훈계는 안 하시는 편이 나았겠다. 솔직히... 쫌 뻔뻔한 영화였다.

17. 꿈 (It’s a Dream) ㅡ 차이 밍량(蔡明亮, Ming-liang Tsai) 한 꼬마가 가족들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왔다. 꼬마는 아마도 어릴 적의 차이 밍량인 듯... 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근데 뭔가 묘하다. 젊은 모습의 아버지와 노년의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있다니...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뒤섞인 듯한 야릇한 꿈이다.

18. 그 남자의 직업 (Occupations) ㅡ 라스 폰 트리에 (Lars von Trier)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이 상영되는 극장 안. 라스 폰 트리에 감독도 관객들 속에 앉아있다. 감독에게 웬 남자가 자꾸만 말을 걸어온다. 이 남자, 자기가 꽤 성공한 비즈니스맨이고 아주 잘 나간다고 떠벌댄다. 영화를 보러 온 게 아니라 제 자랑이나 하기 바쁜 놈이다. 아하하, 그래서 감독의 응징이 있다. 응징이 좀 빡쎄기는 하지만 통쾌한 면도 있다. 영화 볼 때 떠드는 인간들, 사실 밉잖아.

19. 선물 (Le Don / The Gift) ㅡ 라울 루이즈 (Raoul Ruiz) 삼촌이 조카에게 50년 전의 추억을 얘기하고 있다. 칠레 국경 부근에서 인디언들에게 16밀리 필름 영사기와 라디오를 선물로 줬다는... 그리고 그게 진짜 멋진 선물이 되서 2년 후 자기에게 돌아왔다는... 자, 잠깐~. 이 삼촌, 맹인이다. 눈이 안 보이는데 2년 후에 돌아온 것이 뭐였느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걸까...? 영화란 게 결국 현실에다 상상이 더해져서 나오는 거라는... 그런 얘기인가보다.

20. 바로 앞의 극장 (Cinéma de Boulevard / The Cinema around the Corner) - 클로드 를르슈 (Claude Lelouch) 를르슈 감독의 부모님네 사랑 이야기. 하긴. 극장이 예나 지금이나 연애가 꽃피는 장소기는 하다. 아하하, 태어나기 전부터 자기 인생은 영화와 연관되어 있었다는 유쾌한 자랑질...?

21. 첫 키스 (First Kiss) ㅡ 구스 반 산트 (Gus Van Sant) 아무도 없는 극장에서 소년이 영사기에 필름을 넣고 돌린다. 스크린에는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 소년은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 아름다운 해변에 발을 디딘다. 그리고 영화 속의 소녀와 첫 키스를 한다. 아, 뭐... 소년은 예쁘다. 파라노이드 파크에 나온 애들처럼 샤방샤방 예쁘다. 구스 반 산트 감독님은 점점 더 소년들에 관심을 가지시는 듯...(?)

22. 에로틱 영화 보기 (Cinéma Erotique / Cinema Erotique) ㅡ 로만 폴란스키 (Roman Polanski) 극장에서 <엠마누엘>이 상영되고 있다.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중년 부부가 이걸 보고 있다. 똑같이 안경을 끼고, 똑같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그리고 한쪽 구석에서 웬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린다. 그 신음소리가 점점 커져서 영화를 보는데 방해가 될 지경이다. 중년 부부도 라스 폰 트리에 감독처럼 응징을 할까...? 그, 그건 아니더라. 사람에겐 겉으로만 봐서 모르는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 의외의 발상은 유쾌했다.

23. <최후의 극장에서 자살한 마지막 유태인> (At the Suicide of the Last Jew in the World in the Last Cinema in the World) ㅡ 데이빗 크로넨버그 (David Cronenberg) 미래의 어느 날. 영화는 없어졌다. 그리고 지금 막 세계 최후의 영화가 만들어지려고 한다. 세상에 딱 하나 남은 유태인이 자살하려는 순간을 생중계하는 것이다. 그것도 세상에 딱 하나 남은 극장의 화장실에서~. 자살하는 유태인 역을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이 했다. 아하하, 감독님 연기 킹왕짱이다~. 영화 내용은 농담인 듯도 하지만... 왠지 뼈가 있는 듯...? 유태인 자본이 죽으면 영화 산업도 간당간당하긴 하겠지.

24. 이걸 주려고 9천 킬로나 날아왔어요 (I travelled 9.000km give it to you) ㅡ 왕가위 (王家衛, Kar Wai Wong) 왕가위 영화는 척 봐도 표가 난다. 시작하자마자 어, 이거 왕가윈가봐. 그랬는데 맞더라. 그니까 뭐... 깜깜한 영화관 안은 관능에 눈뜨기 좋은 장소라는 건가벼. 근데 나도 화면 안의 관능에 휩쓸리기엔 좀 무리가 있었다. 일단 제공하는 이미지가 내 취향이 아니었거든. 그리고 좀 진부한 코드들... (뻘뻘...)

25. 내 로미오는 어디에? (Where is my Romeo?) ㅡ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Abbas Kiarostami) <로미오와 줄리엣>이 상영되고 있는 이란의 극장 안. 여자 관객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고 있다. 나는 꼬꼬마 때 보면서 남자들 의상 땜에 웃기만 했었는데... 그렇게 슬픈 영화였나...? 영화보다 관객들 표정이 더 영화 같다. 이런 관객들이야말로 감독들의 꿈이겠지. 그래. 도끼로 콱 찍어버리고 싶은 관객이 있다면, 다른 한 편엔 이런 관객도 있어야...

26. 마지막 데이트 (The Last Dating Show) ㅡ 빌 어거스트 (Bille August) 덴마크 남자와 인도 여자가 덴마크어로 된 영화를 보고 있다. 둘의 첫 데이트인 모양이다. 여자는 아직 덴마크어를 잘 모르는 듯. 남자가 여자에게 영화 내용을 설명해준다. 그러다 다른 관객하고 시비가 붙는다. 남자는 첫 데이트부터 여자 앞에 흉한 꼴을 보일 수는 없고... 딴에는 곤란한 상황이다. 뭐, 영화 내용을 똑바로 잘 얘기해줬음 좋았을텐데... 쿠헤헤, 참을 수 없는 오지랖의 욕망은 어디에나 있나보다.

27. 난감함 (Awkward) ㅡ 엘리야 슐레이만 (Elia Suleiman) 시사회를 치르는 감독의 기분을 감독이 직접 연기했다.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초초해하는 연기가 능청스러웠다. 인상은 안 그렇게 생기셨는데 의외로 코메디에 강하시고~. 발랄하고 웃겼다.

28. 독특한 만남 (Rencontre Unique / Sole Meeting) ㅡ 마누엘 데 올리비에라 (Manoel de Oliveira) 후르시초프 서기장과 요한 23세가 무성영화 속에서 만난다. 어색하고 뻘쭘하고, 근데 웃기기도 하고... 후르시초프 서기장은 교황을 동무라고 부른다. 아하하. 교황은 서기장의 배를 쓰윽 만지면서 우린 공통점이 있다고 하고... (비슷한 부피의 똥배는 과연 친근감을 주는가는 나중에 따지자.) 부담스런 인물들이 만난 뻘쭘한 순간을 유쾌한 상상으로 풀어냈다.

29. 칸느에서 5,557 마일 떨어진 마을 (A 8,944km de Cannes) ㅡ 월터 살레스 (Walter Salles) 칸느로부터 5,557 마일 떨어진 곳. 브라질의 어느 도시에 있는 극장이다. <400번의 구타>가 상영 중인 극장 앞에서 두 남자가 떠들고 있다. 시작은 400번의 구타가 포르노 아니냐는 소리부터였다. (어허, 이보셈~~.) 그러더니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깐느에 대한 만담. 여기에 브라질 음악다운 연주도 끼어든다. 만담은 막 랩으로 변하고~. 현학적인 깐느, 속물적인 깐느라는 비판도 나오더라. 막 신명나게 노는 뮤지컬 영화 비슷했다.

30. 평화 속 전쟁 (War in Peace) ㅡ 빔 벤더스 (Wim Wenders) 콩가 강가 한 마을의 작은 영화관. 황토색 흑벽돌 위에 Ciné Video라고 페인트로 대충 쓴 허름한 상영관이다. 여기서 <블랙 호크 다운>이 상영되고 있다. 식민지배와 군부독재에 전쟁에 오래 시달려온 사람들이 전쟁영화를 본다. 직접 겪던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나서 스크린 속의 전쟁을 구경하는 거다. 이제 전쟁이 사라진 콩고에선 전쟁을 영화로 보는 평화를 누리고 있단 거겠지.

31. 자전거 모터 (Zhanxiou Village) ㅡ 첸 카이거 (Kaige Chen) 깜깜한 밤. 동네 아이들이 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려고 몰래 모인다. 허름한 공간. 전력이 모자라면 자전거를 열심히 돌려야 하는 환경. 그래도 아이들은 영화를 보는 게 마냥 좋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아이 하나. 근데 이 아이는 영화를 ' 눈으로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치만 가장 오래 가장 행복하게 영화를 즐겼다. 아, 이거~~. 이냐리투 감독하고 찌찌뿡~! 영화는 시각에만 호소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똑같이 해주셨다.

32. 해피 엔딩 (Happy Ending) ㅡ 켄 로치 (Ken Loach) 극장에 온 아빠와 아들. 뭘 볼까 고민한다. 공포? 코미디? 로맨스? 에로? 이것도 싫고 저것도 별로고... 결국 툴툴거리면서 내린 결론은 에라, 축구나 보자~. 이거다. 다들 눈 빤짝하면서 소중한 영화관, 추억의 영화, 극장의 낭만을 말하는데... 쿠하하, 켄 로치 감독님. 멋지시다. 맨 끝에 이런 게 있어서 균형이 맞는 거 같다.

★ 프로젝트에 참가작이지만 상영에선 빠진 작품 : 마이클 치미노 (Michael Cimino)의 <No Translation Needed> . 에단 코엔과 조엘 코엔 (Ethan Coen & Joel Coen) <World Cinema> .

짧게 쓰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길어졌다. 사실 더 쓰고 싶은 말도 많은데 말빨이 딸려서... 그냥 거장들 작품을 짧게 짧게 맛보기라도 하는 게 고마운 기획이었다. 깐느니까 이런 것도 하고, 이쯤 되는 감독들이니까 프로젝트에 낄 만하고... 그렇다 싶더라. 감독 이름은 각 영화 바로 뒤에 나와서 영화 퀴즈 느낌이기도 했다. 척 보고 맞출 수 있는 건 반의 반도 될까말까였지만... 솔직히 영화 전체가 다 좋았다곤 못 하겠다. 편차가 좀 있었다. 젤 좋았던 건 데이빗 린치. 다르덴 형제 영화도 좋았다. 난니 모레티 꺼도 유쾌해서 좋았고... 쉽게 빠질 법한 감상에 빠지지 않는 켄 로치의 해피 엔딩도 좋았다. 지루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훌훌 즐겁게 봤다. 어, 데이빗 린치 예전 영화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이레이저 헤드나 엘리펀트 맨, 블루 벨벳 같은 거. 드라마 트윈 픽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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